저자인 롬보르가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그린피스’의 회원인 환경주의자이자 통계학자인 롬보르가 통계를 통해 환경주의자를 비판하던 줄리언 사이먼의 인터뷰를 보고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조사를 하다가 오히려 그에게 동화되어 기존의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자료들을 보고 그가 환경주의를 비판하고 나서게 되었는지 흥미가 생겼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은 무려 1,000 페이지가 넘는다. 주석만 200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본문에 수많은 도표와 자료들이 담겨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편견에 의한 면이 크고 우리들에게 통계적 자료를 통해 시각적인 측면과 논리적으로 쉽게 그 주장들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대부분의 잘못된 정보의 타겟은 저명한 환경주의자인 레스터 브라운과 그가 소장으로 지냈던 월드워치연구소다. 그래서 본문을 읽으면 꾸준히 월드워치연구소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엄청난 두께의 책이지만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1부: 너무나 뻔한 이야기들’에서 대략적으로 말하고 있고 나머지 부분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반복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방대한 두께지만 생각보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1부에서 저자는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개선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특히 그들의 현란한 수사학적 눈속임을 비판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세계 각국에서 각각의 곡물에 대해 농부들이 더 이상 수확량 증산을 달성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상황이 언제쯤 오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언급은 하지 않으며 수사학적인 눈속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왜 미디어는 좋지 않은 뉴스만 하는 지에 대해 설명한다. 미디어의 특성상 부정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출 때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뉴스를 선호한다. 그래서 환경주의자들의 자극적인 전망들이 이들에게 선택되어 우리들에게 선전이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2부: 인류 복지와 3부: 인류 번영은 지속될 수 있을까는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환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으며 삶의 질 또한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경우 아직 문제가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기 보다는 과거보다 더 나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유지할 수 있으며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큰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용할 자원의 고갈은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멀고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효율적인 사용을 하게 되어 자원을 절약하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계속 지속될 수 있는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4부에서는 오염에 대한 편견을 줄여준다. 산성비가 삼림을 파괴하지 않았으며 삼림 정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기오염과 하천 수질도 과거와 비교해서 모든 항목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앞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유지가능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5부: 내일의 문제들은 이 책의 핵심파트로 보인다. 특히 지구온난화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당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 정답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지구 온난화에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인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것인지 판단해야한다. 그리고 지구 기온을 조금 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경제적인 낭비이며 차라리 그 돈을 개발도상국에 사용하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마지막 6부는 우리는 곤경이 아닌 진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지금까지 했던 주장을 다시 보여주고 그런데도 우리는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물려받은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세계의 실제 모습이다. 측정 가능한 모든 중요한 분야에서 인류의 운명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앞으로 계속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로 두꺼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저자의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1부에서 그가 설명하는 그릇된 통계와 균형을 잃은 언론 매체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 공감했다. 특히 통계학자인 그가 지금까지 발표된 환경에 대한 비극적인 내용들에 쓰인 통계를 반박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할 때 주로 쓰는 ‘기회비용’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과연 환경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암울하지 않은 현실에서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그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해서 더 많은 효용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는 것도 동의한다.
대부분 동의한다고 말한 이유에는 이 책에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런 그가 멸종위기 동식물에 대한 지적을 할 때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 너무나 비관적이고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며 실제로는 50년에 0.7%가 멸종한다고 한다. 물론 매년 4만 종의 생물이 멸종한다는 노먼 마이어스의 주장은 잘 못 되었고, 그를 포함한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과 신뢰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계속 그가 주장하던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피해가 있을 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물론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을 구하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라지는 0.7%에 해당하는 동식물의 경제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 가치와 그 생물을 살 리기 위한 비용을 서로 비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석유문제에 대한 대체에너지와 대기오염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에서 너무 낙관적으로 이 문제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유의 고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후 대체에너지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낙관성이 아쉽다. 그가 설명한 대체에너지 중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마 셰일오일일 것이다. 그는 본문에서 셰일오일에 대해 무려 250년 간 사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11월 텍사스 대학 석유 지질학과 교수인 태드 팻잭가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셰일에너지 매장량이 2017년 정점에 달한 후 급속하게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원유 가스 탐사업체인 샌드리지사는 처음 매장량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표했었으나 지금도 계속 하향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말은 너무 과장되었다.
셰일오일을 제외한 다른 대체에너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다른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실용화 가능성이 낫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태양 에너지와 풍력에너지의 생산 비용이 94~98%나 감소해서 이제 엄밀한 의미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단계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주장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실용화가 되기는 무리로 보인다.
대기오염에 대한 설명도 비슷하다.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 살아 왔는지를 언급하고 현재 예전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대기오염에 대한 문제를 인정하지만 그 피해는 과거보다 적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점과 결국 미래에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는 모두 해결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너무나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준다. 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줄 때 객관성을 잃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면 대부분이 결국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 다 해결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론으로 맺어져서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 물론 이러한 나의 불만은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도 한참 지난 세대를 살아가며 현재를 기준으로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미래에 대한 관측을 현재와 비교하며 꼬투리를 잡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삼림이 줄지 않고 있다는 그의 주장에서 사용된 통계자료가 삼림 전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쉽다. 전 세계 삼림이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니기에 대륙별로 심하게 감소한 지역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증가한 지역도 있을 것이다. 삼림이 지역마다 다르고 그 삼림을 구성하는 나무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기에 그들의 경제적 가치도 모두 다른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지구 전체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환경주의자를 비판할 때 자주 언급한 수사학적 속임수를 자신이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도 환경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주장을 위해 교묘하게 글을 작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의 근본적인 주장에는 크게 동감한다. 환경주의자들의 과도한 생태주의와 언론 매체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우리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해 크나큰 착각에 빠뜨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환경주의자들로 인해 우리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환경문제에 대해 깊히 생각하며 살게 됐다. 그렇지만 현재 그들의 모습을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주의자들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예측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저자의 마지막 멘트에 크게 공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