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가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내가 가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표지가 모두 벗겨져 있는데 이번에는 그 덕분에 책을 재밌게 봤다. 인터넷에서 이 책의 표지를 찾아보니 역시나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관련 책에 저런 멘트가 적혀 있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미스터리 추리물에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오는 반전이 핵심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저런 띠지를 보면 책을 보고 싶기는 커녕 흥미를 잃어 버린다.
어쨋든 저런 띠지를 보지 않고 읽은 이번 책은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그가 쓴 '마구'라는 소설을 읽다가 실망하고 그의 책을 잠시 멀리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제목과 굉장히 두꺼운 두께를 보고 흥미가 생겨 빌려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반전은 이 책이 작가의 신작이 아닌 1987년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 해설을 읽다가 정말 크게 놀랐다.
책의 줄거리는 신 학생가의 등장으로 몰락한 구 학생가를 중심으로 구 학생가의 '푸른 나무'라는 가게에서 일 하는 고헤이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여자친구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위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반전의 연속이다.
반전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면 그의 소설을 조금이라도 본 독자라면 어느정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 나름대로 깔끔한 편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찝찝함이 있었는데 그건 소설에서 밀실을 푸는 방법이나 반전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 고헤이와 그의 여자친구 히로미의 관계 때문인데 소설의 끝을 향할 수록 주인공 고헤이에 대한 동정심이 커지고 예전에 읽었던 그의 명작 '비밀'이 조금 떠올랐다. 내가 '비밀'을 읽고 거짓말 안 하고 진심으로 역겹고 토할 것 같았는데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이유가 존재한다. 그건 주인공 고헤이의 행동을 보고 느껴진 것인데 이 책이 정말 80년 대 후반에 나온 책인지 궁금할 정도로 자유로운 인간관계에 놀라면서 그 행동 덕분에 어느정도 동정심이 줄어들었다.
고헤이라는 주인공을 보고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프리터로 지내는 주인공. 그리고 능력이 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어도 취직에 목숨을 거는 현재 한국의 청년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참 배부른 놈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내 친구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힘겨움을 느끼기 쉬운데 고헤이는 정말 여유롭다. 물론 책이 지금 시기에 나온 책이 아니고 우리 나라가 아닌 일본 소설이지만 그런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책이 무려 560페이지를 넘기는 장편 소설이지만 그의 많은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글씨가 크고 간격이 넓은 편이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페이지에서 주는 압박감에 비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 생각하고 이 책이 그의 초기 소설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내가 미쳐 모르고 있던 그의 과거 소설이 궁금해졌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신작(국내 기준)도 아직 건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