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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축덕의 일상

[2014.08.16] 생애 첫 포항 스틸야드 원정기

- 작년 8월에 있었던 포항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포항 스틸러스 vs 전북 현대의 경기 직관 후기입니다. 작년입니다.. 작년..


 




 계획을 미리 짜두는 것을 좋아한다. 갑작스럽게 행동하다 실수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적당히 전체적인 틀을 잡아두고 그 외 세세한 건 그 계획의 당일이 가까워 질 때 하나씩 늘려간다. 8월 16일 포항과 전북의 빅매치가 있던 날. 나는 그 날 경기를 보기 위한 계획을 5월 중에 세웠다. 물론 전체적인 틀만. 축구 보고 그 날 막차타고 복귀하는 계획을.


 16일이 가까워 질수록 일정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축구 외엔 관심이 없지만. 이런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난하게 적당히 즐기고 왔다는 증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즐기는 맛 집탐험을 위해 적당히 알아봤다. 인생의 낭비인 SNS지만 많은 정보를 얻기엔 충분했다. 많은 축구 관련 커뮤니티가 있지만 실시간 반응면에서 SNS가 훨씬 빨라서 유용했다. 많은 정보에 내가 가는 곳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그래서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시외 버스 터미널 (이 곳이 시내로 추정된다)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경기장으로 가는 걸로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8월 16일 오전 11시 30분에 포항에 도착 했다. 살면서 경주 외엔 경상도에 간 적이 없는 줄 알았는데 포항에 도착하고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때 포스코 견학을 갔던 게 생각이 났다. 처음인 줄 알았는데. 적당한 계획을 세웠던 나는 포항 원정에서 여러가지 실수를 범했다. 그 중 하나가 이 터미널이다. 


 계획대로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터미널의 이미지가 아니라 살짝 당황하기는 했으나 큰 건물 쪽으로 가서 주위 식당을 찾다가 홈플러스 근처 골목에 있는 맛 집으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별미 돌솥 해물 알밥을 주문했는데 아직 식사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고 해서 조금 기다린 뒤에 먹었는데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음식에 대한 평가는 맛있다와 맛없다라는 단순 평가밖에 할 줄 모르기에 이 날 먹은 음식은 좋은 편이었다. 경상도하면 다들 '마!'를 쓰는 줄 알았는데 그건 부산만 쓰나 보다. 시간이 지나고 들어온 손님들의 대화에서 '야'가 계속되는 걸 보니 아닌가 보다. 밥 먹고 식당 아주머니와 대화를 조금 했는데 축구보러 왔다는 이야기에 매우 놀라시면서 포항까지 온 것을 매우 신기해하셨다. 포항 팬이냐는 질문에 그냥 축구가 좋아서 왔다는 이야기에 더욱 놀라셨다. 혼자와서 더욱 그런 반응이었을지도.


 식당에서 시간을 잠시 더 보내고 (아주머니께서 커피를 서비스로 주셨다.) 홈플러스 근처에 있는 영풍문고를 찾기 시작했다. 영화보며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지만 보고 싶은 작품이 이제 없던터라 독서나 해야지 하는 마음에 목적지를 서점으로 정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영풍문고가 보이지 않았다. 네이버 지도에는 바로 옆에 있다고 나오는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영풍문고가 여기 있냐고 오히려 되묻기에 다시 확인 해봤는데 거기서 내 적당한 계획의 단점이 드러났다. 나는 지도 검색에서 포항 터미널로 검색하고 주위를 다녔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시외버스 터미널이었고 나는 고속버스터미널 주위를 왔다갔다 하고 있던 거다. 하필 두 터미널 주위에 홈플러스가 있어서 바보 짓을 했던 거다. 다음부터는 GPS를 키고 지도 앱을 써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서점은 홈플러스 건물에 같이 있었다. (CGV도 함께) 서점에 들어가고 책 구경을 하다가 평소 즐겨보던 작가의 신작이 보여 한 권 집어 열심히 정독했다. 다 읽고 시계를 보니 3시간 가량 지났기에 경기장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경기장에는 한 시간 정도는 일찍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고 처음 오는 곳이라 경기장까지 확실하게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축구를 보러 갈 때 만약 길을 잘 모른다면 그 날 경기를 펼치는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 경기장까지 어느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 지는 알지만 그 후로 어디로 가야하는 지는 모르기에 레플리카를 입은 팬들을 따라가기로 정했다.( 마침 전북 레플을 입고 있는 커플도 보였다) 포스코 본사. 나의 목적지 스틸야드가 있는 곳이자 내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이다. 포스코 본사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경기장을 향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향하는 것으로 보여 나도 그 인파 속에 묻어갔다. 그런데 아까 봤던 전북 레플을 입은 커플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스틸야드를 빨리 보고 싶어서 빠르게 걸어 갔다.




 스틸야드는 내가 꼭 가고 싶은 구장 중 1순위에 뽑히는 구장이다. 그래서 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떨릴 정도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경기장까지 생각보다 가까운 편이었다. 경기장에 가까워지고 보이는 인파에 놀랐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고하고 경기장 외부에는 많은 인파가 있었다. 아직 경기 시작이 한 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많다니..하고 보니 여러 행사가 진행 중임을 알게 됐다. 가장 긴 줄은 페이스페인팅을 하는 줄이었고 다른 줄은 토토 체험 부스였다. 토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행사 진행 요원의 매우 아름다운 모습에 나도 참여하고 말았다. 프로토 천 원 체험을 할 수 있어서 홈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2폴더를 만들고 식혜도 받고 W석 티켓을 구매하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여기서 나는 두 번째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 게 됐다.


 프로토 이벤트에 포항 승리를 체크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 아니다. W석에 들어서고 나서 나의 실수를 바로 깨달았다. 어쩐지 티켓 값이 싸던지 스틸야드는 W,N,E석의 구분이 없이 그냥 일반석으로 분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던 자리는 약 8천원을 더 지불하면 되는 자리였는데 이미 늦었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W석 사이드 좋은 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벌써 포항 진형에 가까운 W석은 가득 차서 괜찮은 자리가 없었기에 전북 서포터 근처 자리를 잡았다. 경기장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경기장 중에서 최고였다. 숭의와 스틸야드가 자주 비교되고는 하지만 스틸야드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그 낡은 구장이 멋드러지게 느껴졌고 작은 구장에 가득 찬 관중들 덕에 이 느낌이 강해졌는 지도 모른다. 시설 면에서는 많이 부족할 지 모르나 그 분위기는 다른 구장을 초월한다. 압도적인 스틸야드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내가 체험하지 못했던 웅장함이 느껴졌다. 수많은 관중이 있었기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석에 앉은 관중들 모두가 플레이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올스타전 제외)



 (경기 약 한 시간전, 2층에서 찍은 모습 W석 1층은 이미 절반 이상 찬 상태였다.)


 안경을 두고와서 일반적인 경기장이었으면 선수 이름이 보이지 않았겠지만 스틸야드는 피치와 관중석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기는 원정팀 전북이 지금까지 대 포항전 징크스를 깨고 압도했다. 포항은 확실히 전반기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어서 5월에 내가 기대했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슈팅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은 내가 기대하던 포항의 모습이 아니다. 그에 비해 전북은 최근의 상승세를 제대로 이어갔다. 이동국의 어시스트와 골을 스틸야드에서 보니 포항 팬들의 기분이 궁금해 졌고 그 기분은 관중들의 욕설로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경기를 보며 확실한 공격수가 있음이 얼마나 든든한 지 보여주는 날이었다. 골 장면만 놓고 보더라도 확실한 공격수의 존재감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본다. 역시 공격수는 한 방이 있어야 한다.


 경기가 끝난 후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경기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두워지면 길치가 되는 나이기에 사람들을 따라갔는데 그곳이 주차장이라 당황했다. 그래서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걸어가서 겨우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앞 정류장으로 가기로 정했는데 이 선택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수원 갈 때 생긴 습관인데 포항에서 도움이 됐다. 포항의 경우 버스 노선도 적고 배차간격이 길어 버스를 놓치면 막차도 같이 놓칠 확률이 컸는데 한 정류장 앞에서 타니 겨우겨우 탈 수는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포항 원정길에 가신다면 참고하시길.


 이리하여 생애 첫 스틸야드 경험이 끝이났다. 계획상에 실수가 조금 있었지만 다음에 올 때는 오늘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이 날의 기억이 다음주에 있을 전주 원정에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기대감을 키운다.